신성한 의지와 신성한 소망


모든 것이 신성한 의지에 따라 일어나고 바바께서 설명했듯이 신성한 의지 없이는 나뭇잎 하나도 움직일 수 없지만, 제한된 마음은 신성한 의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도 이해조차 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이해 너머에 있는 일이다. 아바타는 인류에게 그의 소망을 전하기 위해 오므로, 인류는 그의 소망을 따르고 신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러나 인류는 무지로 인해 그 분의 소망을 자주 무시하고 자신을 위안하려는 시도에서 사건들을 잘못 해석하여,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이 신성한 의지 때문에 발생한다고 단언한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면, 어느 사람이 무언가를 훔친다. 경찰이 그 도둑을 잡아 판사에게 데려간다. 판사는 그에게, “이 행동을 했습니까?” 묻는다.


그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모든 일은 신성한 뜻에 따라 일어납니다. 내가 훔치는 행위를 했지만, 신께서 이 행위를 의도하셨음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판사는 “좋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도둑질이 신성한 의지에 따라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감옥에 가야 합니다. 당신이 감옥에 가야 하는 것도 신성한 의지에 따른 것입니다.”


이 간단한 예는 우스워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은 너무나 자주 우리 삶의 더 복잡한 상황들 속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행동에 대해 비슷한 합리화를 한다. 자신의 인상들(산스카라들)로 인해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우리 자신일 때도, 신이 '그것'을 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가 가끔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또 다른 간단한 예를 들어보면:


한 바바 러버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바바가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바바의 의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친구에게 "바바께선 내가 아내를 떠나길 원하셔. 왜냐하면 내 삶에서 진정한 사랑인 여자를 만났기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그 친구는 “그것이 바바의 의지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니?”라고 묻는다.


그는 “내가 이렇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건 바바의 의지가 틀림 없어. 그분은 자신의 뜻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기 때문이야."라고 대답한다. 


이런 것은 우리가 아바타의 소망을 듣지 않고, 자기 자신의 소망을 들을 때의 상황이다. 우리는 신성한 소망과 신성한 의지에 대한 우리 자신의 철학으로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우리는 신성한 의지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 그러나 그분의 자비로 인해, 우리는 아바타의 인류에 대한 사랑과 진리의 메시지인 신성한 소망을 따를 수 있다. 그분의 소원은 오실 때마다 근본적으로 같긴 하지만 (“신을 사랑하고, 동료 인간을 사랑하라”), 그분의 소망은 그 당시의 인류가 처한 곤경에만 적용되는, 인류를 특정한 장애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한 여러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코란, 베다에 있는 진리의 말씀은 오늘날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들은 인류 역사상 다른 시기를 위한 것으로, 인류의 특정한 상황과 산스카라들에 적합했다. 말씀들은 정확하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재 상황과 인상들에서 그 말씀을 이해하려고 할 때, 그것들을 현대적인 이해에 따라 해석하게 된다. 우리의 상황과 인상들(impressions)이 그 당시의 인류의 상황과 인상과 다르기 때문에, 이것은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이전 아바타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직 깊은 사랑만이 그 말씀들을 밝힐 수 있다. 그러나 일반 대중에게는 그러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 진리의 말씀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점차 사제 계급이 생겨나서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방법을 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제 계급 역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식대로 해석을 하여, 결국 아바타의 소망을 따르는 대신 인류가 따라야 할 규범이 되고 만다. 그래서 아바타가 이전의 하강 때 전해준 소망을 결국은 이해 없이 따라가게 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말씀을 따르고, 의식(의례)이 생겨난다.


아바타가 다시 돌아오면, 그가 의식의 방해물을 지워서 인류가 신을 따를 수 있게 된다. 이전 아바타의 강림 때의 소망을 따르는 것에 진실로 신실한 가슴을 지닌 이들은, 과거 당시에 주어진 진리의 말씀을 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비러벳 바바는 신을 따르는 가장 쉬운 길은, 가장 최근의 아바타의 소망을 통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메시지는 인류의 현재 상황과 산스카라들에 가장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고대의 그이로서 그는 당시의 인류를 도울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소망을 전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계속 해서 지상에 내려와야 한다. 인류의 산스카라들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인류의 상황도 시간에 따라 계속 해서 변화한다. 그러므로 아바타의 소망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류가 그 소망을 인식하도록 아바타가 어떻게 작업하는지는 아바타의 이전의 하강 후에 인류가 집적한 산스카라에 달려 있다. 조로아스터(Zoroaster) 시대의 인류가 신에 대해 어떤 의식의 장애물을 가지고 있었든지간에, 람 시대에는 동일한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람(Ram) 시대에 존재한 신에 대한 장애물이 무엇이었든지간에, 크리슈나 시대에는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크리슈나(Krishna) 시대에 신에 대한 장애물이 무엇이었든지간에, 부처 시대에는 동일한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부처(Buddha) 시대에 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무엇이었든지간에, 예수님(Jesus) 시대에는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 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무엇이었든지간에, 모하메드 시대에는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하메드(Mohammed) 시대에 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무엇이었든지간에, 메허 바바(Meher Baba) 시대에는 그와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고대의 그이가 예수님의 모습으로 내려왔을 때, 그의 작업에는 자신의 능력을 써서 대중을 끌어들이고 치유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바바는 예수로서의 자신이 당시에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하셨다. 그는 최후의 만찬에 제자들과 함께 앉았을 때, 자신의 소망의 일부를 말씀하셨다. 그는 그들에게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도록 했다. 그러나 그분이 그들에게 먹으라고 한 빵은 그 분의 몸에 비유되었고, 그들에게 마시라고 한 포도주는 그분의 피에 비유되었다. 그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란 것을 알아서, 제자들에게 그 분을 기억하며 빵과 포도주를 먹게 하신 것이다. 그분의 발언은 기독교인들이 여전히 그를 기억하는 주된 방법의 하나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이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예수님을 기억하도록 돕는 그의 방식이었다.


그분의 소망의 또 다른 예는 '주기도문'인데, 그분은 추종자들을 돕기 위해 이 기도문을 주시고 반복하라고 하셨다. 비러벳 바바는 이 기도를 언급하면서, 그 어떤 기도도 원래의 힘대로 계속 지속되지 않는다고 말하셨다. 그 힘은 일정 시간만 지속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바바께서 여러 기도들을 주셨다. 그는 자신이 육체 안에 있지 않을 때, '파르와르디가르 기도문'을 반복함으로써 추종자들이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신과의-역자 첨가) 연결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거라고 얘기하셨다.


신의 메신저 모하메드가 왔을 때, 그의 일은 전쟁에 관여하는 것을 포함했다. 그분의 소망에 관해서, 우리는 몇 가지 실제적인 문제로 가 본다. 그분은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면 이자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의 상황은 누군가가 대출을 받으면 너무나 많은 이자가 부과되어, 평생 동안 대출을 갚을 수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이제 상황은 아주 다르다. 은행이 있어서 대출받을 때 고정 이율이 있다. 그리고 은행 계좌에 돈을 입금하면, 자신이 원치 않아도 은행에서 이자를 자동으로 지급한다. 현재와 또 다른 상황은 모하메드가 남자에게 아내를 4명까지 허용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여성의 수가 남성보다 많을 뿐 아니라, 여성은 남성의 보호가 필요했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전세계적으로 인구 과잉이 되었기 때문에, 가족 계획이 필요하다. 


메허 바바는 침묵 속에서 일하셨다. 하지만 인류의 지성이 발달했기 때문에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전의 어느 강림 때보다 더 많은 말씀을 나눠 주셨다. 나는 만달리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바바가 어떻게 그의 소망을 얘기하실 지 알 수 있었다. 때때로 소망은 어느 특정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다른 때는 그의 만달리만을 위한 것이었다. 때로는 멀리에 살았지만 그와 가까운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또 다른 때는 일반 대중에게 소망을 말씀하기도 하셨다.


비러벳 바바는 일반 대중에게 “나를 기억하세요.”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단순히 메허 바바를 기억하는 것이 영성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금욕, 참회, 금식, 침묵, 만트라 반복을 하지 않아도 되나? 이런 것이 영성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상의 활동들로 마음이 산만해지는 이 행위의 시대에, 그분은 인류가 그를 기억하는 것으로 그분을 따를 수 있도록 매우 간단히 만드셨다. 사람들은 자신이 그분을 기억할 때, 그분이 어떤 도움을 주는지 모른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을 위해, 그분은 그들을 자신에게 묶어주시고 점차 그들의 인상을 지우신다. 바바가 일반 대중에게 “나를 기억하세요”라고 말할지라도, 영적 수련생으로서의 그대는 그분을 기억하라는 소망을 너무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그런 후에야 그대는 실제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그분을 자신의 끊임 없는 동반자로 만들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섬김의 통달>(Mastery in Servitude)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부분은 비러벳 바바의 '섬김의 통달'이라는 모토 아래 신탁 위원이든 영적 수련자든 유급 직원이든, 신탁(Trust)의 전체 인력을 구성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부분은 '나라얀 세바'(신에 대한 봉사)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의 봉사는, '의식적인 신'(God Conscious) 즉 아바타가 '무의식적인 신'(God Unconscious) 즉 그분의 창조물을 섬기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고, 진정한 '섬김의 통달'인 '나라얀 세바'를 그분이 어떻게 수행했는지에 대해 비러벳 바바의 육체적 삶 속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했다. 이 책은 영적 훈련에 관한 책과 함께, 신탁이 그 목적을 달성하고 활동을 관리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책 <섬김의 통달>에는 비러벳 바바의 '나의 소망'이라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에 대한 부분도 포함돼 있다. 신탁이 운영하는 '섬김의 통달' 프로그램은 바바가 이 메시지에서 언급한 '바바의 소망'에 확고한 기반을 두고 있다. 책의 이 부분에서 나는, '바바의 소망'의 6가지 요점을 각각 취하여 바바의 시대에 일어난 5건의 사건과 모하메드 시대에 발생한 1건의 사건을 통해 그 6가지 진실을 설명하고 있다. 바바는 1958년 메헤라바드에서 그분의 러버들과의 특별한 만남에서 이 메시지를 주셨다. 여기에 언급된대로, 그의 소망을 받드는 사람이라면 어디에서든 누구든지 분명히 그에게 더 가까워질 것이다:



나의 소망


바바께서 말씀하셨다 : 러버*는 비러벳*의 소망을 늘 마음에 새겨야 한다. 나의 러버들에 대한 나의 소망은 다음과 같다 :


1. 그대의 책임에서 움츠러들지 말라.


2. 그대의 세상 속 의무를 신실히 행하되, 늘 마음 뒷켠에 ‘이 모든 것이 바바의 것이다’라고 유념하라.


3. 그대가 행복할 때, ‘내가 행복하기를 바바가 원한다’고 생각하라. 그대가 고통받을 때, '내가 고통받기를 바바가 원한다‘라고 생각하라.


4.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정직하고 신실하게, ‘바바가 이 상황에 나를 놓아두셨다'고 생각하라.


5. 바바가 모든 사람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다른 이를 돕고 섬기려고 노력하라.


6. 나는 나의 ‘신성한 권위’로 모두에게 이르노니, 자신의 마지막 숨에 내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 나에게 오리라. 그러니 그대의 마지막 순간에 나를 기억하는 것을 잊지 마라. 그대가 지금부터 나를 기억하는 것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순간에 나를 기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대는 지금부터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 하루에 한 번씩만 나의 이름을 불러도, 죽는 순간에 나를 기억하는 걸 잊지 않을 것이다.



역자 주 

*러버(Lover) - 사랑하는 이, 사랑의 주체, 신을 간절히 사랑하는 사람. 

*비러벳(Beloved) - 사랑받는 이, 러버가 사랑하는 대상. 보통 신이나 스승이 비러벳이 된다.


(이렇게 비러벳 바바가 주신대로) 그분의 소원을 받드는 것은 신을 따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작하기 좋은 지점이다. 그러나 영적 수련생으로서 그대는 바바가 여기서 말하는 것 이상을 지지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이것은 이 책의 뒷부분에서 설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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