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바의 부재를 느끼지 않지만, 그분이 정말 그립습니다."
- 에루치 제싸왈라, 친밀한 제자
다음은 1969년 1월 31일, 아바타 메허 바바가 그의 육신의 형상을 떨어뜨린 지 몇 달 만에 에루치 제싸왈라가 쓴 것이다.
에루치는 메허 바바의 가장 가까운 제자 중 한 명이었고, 그분의 몸짓과 알파벳 보드를 해석하여 전하는 주된 통역사였다.
1965년 5월, 인도 푸네 구루프라사드. 바바를 따르는 이들에게 인사하는 다르샨 프로그램 중의 아바타 메허 바바.
가까운 제자 에루치 제싸왈라가 메허 바바를 시중들고 있다.
사진 : Meelan Studio (c) Meher Nazar Publications
에루치 제싸왈라에 의해
메헤라자드[메허 바바의 집]은 쾌적하고 평화롭지만, 우리는 모든 것이 비어 있다고 느낀다.
진공 속에서 어떤 존재감을 느끼는 것, 말하자면 진공 속에서 우리 자신을 느끼는 것과 같다.
우리의 하루 일과는 메허 바바가 그분의 육체적 존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있을 때처럼 계속된다.
만달리[친한 제자들]는 메헤라자드에서 계속 살고 있다.
여자들은 그들의 의무를 다하고, 남자들도 그들의 의무를 다한다.
1976년 인도 메헤라자드에 있는 메허 바바의 집 현관 앞.
1969년 1월 31일 메허 바바가 육신을 떨어뜨린 후, 남녀 만달리(친한 제자들)는 영내에서 계속 거주했다.
입구에는 의사 고허 이라니가 아디 K.이라니와 대화하고 있다.
메헤라자드는 현재 메허 바바 주요 순례지이다.
사진 : Meelan Studio (c) Meher Nazar Publications
'바바가 당신을 원하신다', '바바가 그렇게 말씀하셨다', '바바는 당신이 이것을 하기 원하신다.'
우리는 의무를 행하는 가운데, 이 문구들을 슬프게도 그리워한다.
이 문구들은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말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바바의 부재를 느끼지 않지만, 그가 정말로 그립다.
바바가 어디에 계시든 우리는 그분의 침묵 역시 발견했기 때문에, 그분의 침묵도 그립다.
바바와 그분의 침묵은 지난 44년 동안 뗄 수 없는 것이었다.
바바의 활동 가운데 행하는 침묵의 몸짓, 그리고 침묵 그 자체는 생동하는 말씀을 내뿜었다.
그리고 그 말씀들은 바바를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 깊은 곳에 다다라, 그들이 바바의 발 아래 쓰러지게 했다.
이는 러버들이 그분의 신호에 기꺼이 목숨마저 바칠 수 있게 하였다.
이 ‘침묵’을 우리는 지금 그리워하고 있다.
말하고 있는 ‘침묵’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
발현
바바를 사랑하는 러버들도 그분의 육신적 형상이 보이지는 않지만, 바바가 늘 그들의 중심에 있다고 믿는다.
그분은 어느 때보다도 그들의 가슴 안으로 강렬하게 들어온 것 같다.
그들은 보지 않고도 그분의 존재를 느끼고, 나 역시 똑같이 느끼기 때문에 정말 그렇게 믿을 수 있다.
나는 보지 않고도 그분의 존재를 느낀다.
1976년 인도 메헤라자드의 '메헤라의 현관'으로 알려진 곳에서 순례자 구디 하딩(이 사진을 찍은)을 위해 포즈를 취한 여성 만달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의사 고허 R. 이라니, 메헤라 J.이라니(바바의 사진을 듬), 메헤루 R. 이라니, 라노 게일리, 나자 R. 이라니, 그리고 마니 S. 이라니(서 있음).
바바가 육신을 떨어뜨린 후 메허 바바를 더 배우기 위해 온 수백 명의 순례자들을 위해, 여성과 남성 만달리 모두 자신의 시간, 이야기, 환영의 포옹에 관대했다.
(c) Meher Nazar Publications
시대의 아바타와 그분의 침묵, 모든 말씀 중의 ‘말씀’이 널리 방출되고 세계에 알려져서 전세계가 이를 알게 될 날이 오고 있다는 걸, 우리 만달리는 느낀다.
그분이 세상에 현현할(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우리는 여전히 믿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에게 많은 기대를 모았던 아바타가 그들 사이에 살았고, 그들을 위해 고통을 겪었고, 그분의 몸을 떨어뜨리고 그들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분이 아직 육체 안에 있을 때 그를 알게 되었고, 어떤 이들은 그분이 무덤에서 쉬며 침묵 속에서 다르샨[신을 보는 은혜]을 베풀 때 그를 알게 되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가슴 안에 그분이 현현할 때 그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발현이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것은 곧 일어날 것이다.
나는 바바께서 그분의 육신 안에서 나타나거나, 그분의 연인들에게 동시 또는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들에 나타나 다르샨을 준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그분의 전세계적 발현’으로 여길 것이다.
바바의 비전
메허 바바가 육신을 떨어뜨린 그 엄청난 사건 당일이었다.
제사장 옷을 입은 조로아스터교의 한 사제가 바바와의 다르샨을 위해 무덤에 왔다.
그는 아메드나가르의 파르시(조로아스터교의 후예) 대제사장이었다.
1969년 2월 7일, 아바타 메허 바바의 육신 매장일.
1월 31일(메허 바바가 그의 신체적 형태를 떨어뜨린 때)부터 2월 7일(매장) 사이에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의 추종자들이 경의를 표하기 위해 왔다.
이 시기가 ‘최후의 다르샨’(Last Darshan)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 Meelan Studio (c) Meher Nazar Publications
1월 31일, 그 사제는 4시경에 새벽 기도를 위해 일어났고, 기도를 마친 뒤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비전을 보았다.
하얀 말 위에 앉아 있는 바바는 그를 지나쳐 만질(목적지)로 간다고 말했다.
그는 바바가 밝은 후광(halo)에 휩싸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즉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메허 바바에 대해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사제직에 있는 몇 년 동안, 그는 바바를 존경했지만 바바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조금 후, 그는 바바가 그분의 몸을 떨구신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마지막 조의를 표하기 위해 무덤으로 달려갔다.
그는 비전에 압도되어 지하실로 내려가, 바바의 발을 만지기까지 했다.
이것은 이례적인 행동이다.
파르시 사제 계급들은 절대로 시신을 만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 바바는 여전히 살아 계셨다.
이것이, 우리와 함께 있는 내내 그러셨던 것처럼 마지막 순간조차 자신의 감정을 신경 쓰신 고마운 그분의 방식이다.
그는 우리에게 너무나 인내하셨고, 너무나 친절하셨으며, 너무나 사랑스럽고, 너무나 자비로우셨다.
이 모든 것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느꼈고, 그분이 ‘고대의 그이(Ancient One)’라는 걸 알았다.
메카 이야기
전 세계의 이슬람교도들은 이슬람 신자들의 가장 신성한 순례지인 카바(중앙 신전)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메카(Mecca)로 간다.
지난 1,400년 동안, 전세계의 이슬람교도들은 경의를 표하기 위해 카바를 방문해왔다.
1972년 5월 아바타 메허 바바의 사마디(묘역 성지).
인도 메헤라바드에 있는 메허 바바의 사마디는 모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바바의 다르샨을 받고 그분에게 절하러 오는 세계적인 순례지이다.
사진: 페어둔(파드리) N.드라이버 (c) Meher Nazar Publications
이때 카바가 물에 잠겨서 평소에 7바퀴 돌던 하지(순례자)들이 6바퀴 반 밖에 돌지 못했다는 소식이, 신문에 보도됐다.
공교롭게도 그 기간은 1969년 1월 31일부터 2월 7일까지였다.
그런 일은 지난 1,400년 동안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나는 이 기사를 보고, 신호를 주신 거라고 느꼈다.
이번 아바타 형태의 메허 바바께서 그의 재림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이제 ‘메헤라바드에 있는 무덤이 이 시대의 카바’라는 신호를.
출처: 에루치 제싸왈라의 <위대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