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 설명 1
수련생들에게 영적 수련 프로그램 책자를 배부한 후 회의가 열렸는데, 몇몇 거주자들이 내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들에게 나중에 질문을 글로 써 달라고 요청했다. 그 후 나는 FJ. 미스트리 이사와 장기 거주자인 헤더 나델(여성), 재닛 저드슨(여성), 메레딧 클라인(여성)의 서명이 담긴 편지를 받았다. 그들이 나에게 보낸 질문은 정말 좋았고, 그들의 질문이야말로 영적 수련생들이 회의에서 표현한 주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내 관심을 이끌어낸 요점을 명확히 하고 싶다. 그 질문들은 영적 수련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므로, 그들의 여덟 가지 질문과 나의 대답을 이 책 <영적 수련 프로그램> 제2판이 출판될 때 보충 자료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
이제 다른 질문이 생긴다면 비러벳 바바에게 물어볼 시간이다. 그러면 그분이 그대를 인도하실 것이다. 그대는 무엇이든 여쭤볼 수 있다. 다만 그분은 말로 답하지 않고, 그대를 깨우쳐 답하실 것이다.
I. 영적 수련생과의 서면 합의서: 신탁 사무실에서 열린 거주자 회의에서 영성 수련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서면 선서나 ‘새로운 삶’ 고정조건* 서명이 필수로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신탁이 영적 수련생 후보자 자격을 명확히 하고 승인하려면 어떤 문서가 필요하다. 영적 갈망자는 수련을 받기로 한 계약에 대해 헌신하고 이에 선의를 보일 필요가 있으며, 신탁에서는 수련생이 행한 이 헌신의 내용을 서면으로 기록해야 한다.
* 고정 조건: https://meherbabakorea.co.kr/142 참조
질문:
신탁은 영적 수련생이 다음과 같은 계약에 서명하도록 해서는 안 되나요?
(a) 영적 수련 프로그램 책자를 읽으십시오
(b) 신탁 증서 조항에 규정된 대로 "아바타 메허 바바와 그분의 동반자들이 항상 포기하는 것을 모범으로 삼고 실천한 삶, 특히 '새로운 삶'이라 불리는 삶, 그리고 일상적인 세속적 활동 가운데의 초연함, 즉 '세상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을 수련하세요
수련생들과의 회의가 있었을 때, 그들은 영적 수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서면 서약과 바바가 ‘새로운 삶’ 동안 주셨던 고정 조건에 서명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때 나는 가슴(heart)의 문제이기 때문에 각자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오직 가슴(heart)만이 그러한 계약에 서명할 수 있으며, 그 후에야 조건이 따를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고정 조건’에 서명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그것이 규칙이 되어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서명하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삶’은 그런 것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바바의 ‘새로운 삶 메시지’에 끌려서 “비러벳께서 주신 아름다운 메시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메시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바가 ‘새로운 삶’에서 제시한 고정된 조건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이해할까? 지성(知性)은 왜냐고 묻는다. 고정 조건은 내면의 삶을 위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고정 조건은 외적인 생활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면, 당연히 고정된 조건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탁 증서에 명시된 영적 수련은 새로운 삶을 살려는 노력에 기초한다.
나는 바바의 ‘새로운 삶 메시지’를 반복한다.
새로운 삶 메시지
이 새로운 삶은 끝이 없어, 내 육체적인 죽음 이후에도 허위와 거짓말, 증오와 분노, 탐욕과 정욕을 완전히 포기한 삶을 사는 이들에 의해;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욕정 어린 행동을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해되는 행동을 하지 않고 험담하지 않으며, 물질적인 소유나 권력 추구를 하지 않는 이들에 의해, 그리고 존경받지 못함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명예를 구하지도 않고 불명예를 피하지도 않고,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에 의해; 그리고 완전히 전적으로 신에게만 의존하는 이들과 사랑만을 위해서 순수하게 신을 사랑하는 이들에 의해; 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믿고 드러난 실재를 믿지만 어떤 영적 물질적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이들에 의해; 그리고 진리의 손을 놓아버리지 않고 어떤 불행에도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않으며, 용감하게 전심으로 100%의 명랑함으로 모든 역경을 맞이하는 이들에 의해, 그리고 지위나 신념, 종교적 의례를 전혀 중요시하지 않는 이들에 의해 살아남을 것이다. 이 새로운 삶은 설령 이 삶을 살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영원히 살아나갈 것이다.
물론 영적 수련생들은, 바바의 동반자들이 새로운 삶에서 바바와 함께 살았을 때와 같은 환경에서 살지 않는다. 수련생들은 바바의 직접적인 명령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동반자들이 겪었던 것과 같은 정도의 물질적, 정신적, 감정적, 영적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영적 수련생들은 메헤라바드, 메헤라자드, 그리고 메허 나자르의 신탁 부지(Trust Estate)에 거주하며, 그들에게 기본적인 물질적 필수품이 충족된다. 그러나 영적 수련생들은 바바가 노동 단계를 통해 위의 메시지에서 말씀하신 대로의 새로운 삶의 ‘영성’을 살아나가는 것이다. 사실, 비러벳 바바께 헌신하는 바바 센터나 어떤 다른 신탁이나 다른 기관이 원할 경우에도, 이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따르는 데 제한은 없다. ‘새로운 삶’은 온 우주를 위한 것이다.
메허 바바는 ‘계약의 아버지(Agreement walla Baba)’라고도 불렸다. 그분은 수년에 걸쳐 만달리들로 하여금, 너무 많은 계약에 서명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분은 자신이 지시한 대로 만달리들이 서명을 하게 하시고, 우리가 느끼는 것을 쓰게도 하셨다.
우리는 사타라(Satara)에 있었고, 그분은 나에게 서명의 뜻으로 편지를 써달라고 하셨다. 나는 그것을 적어서 바바께 읽어 드렸다. ‘람주 압둘라’는 바바와 초기부터 함께 한 만달리 중 한 명이었고, 그 편지를 매우 고맙게 여겼다. 다른 만달리도 내 편지를 좋아했지만, 람주 압둘라는 매우 비판적인 사람이었는데 편지를 좋아하니 나는 매우 기뻤다. 내가 쓴 것은 가슴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 계약 편지는 만달리에게서 온 모든 편지와 마찬가지로, 펜두가 보관하였다. 펜두가 이 편지를 어디에 보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바는 펜두에게 그것을 보물로 보관하라고 부탁하셨다. 내가 쓴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당신에 대해 몰랐고, 여전히 당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나는 영적인 삶에 대해 몰랐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보았을 때, 당신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 공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신이 나그푸르에 오셨을 때, 나는 어떻게 해서 당신을 만나게 됐는지 몰랐습니다. 이젠 당신이 나를 위한 분, 나를 인도하는 분이라 느끼며, 나는 당신이 요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순종할 수 있는 존재라고 느낍니다. 나는 성취하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나의 성취는,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당신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내게 무얼 하라고 하든,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내 삶에 관심이 있다면, 그건 당신을 기쁘게 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당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며 살겠습니다. 내게 다른 열망은 없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속하기 위해 당신에게 왔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당신에게 속하지 않게 만드는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어선 안 됩니다.
내가 당신을 기쁘게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실패하지 않도록. 내게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걸 알지만, 당신은 나의 힘입니다. 당신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나는 복종이 무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난 복종이, 당신을 기쁘게 하는 것임을 압니다. 내가 항상 당신을 기쁘게 한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나는 여러 번 실패하지만, 당신의 용서가 내게 힘을 주고 강하게 하는 당신의 자비의 무게 아래 내가 있습니다. 오, 비러벳이시여, 내가 그 무엇이든간에 나는 당신에게 속했고 당신도 내게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경우에도 당신을 잊을 수 없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이것이 당신께 드리는 나의 겸손한 요청입니다. 그리고 이 머리가 언제라도 들어올려지지 않도록, 당신의 발 앞에 절합니다.
당신의 겸손한 종
이제 소중한 그대들 모두에게 진실을 말한다 : 나는 분명히, 그분에게 무언가를 얻으려고 오지 않았다. 단지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기쁘게 하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왔다. 나는 바바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태도는 내 평생 동안 유지되었다.
내가 비러벳 바바께 복종에 대해 글로 전한 것은 글뿐 아니라 가슴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무슨 일이 생기면, 가슴에서 나온 그 말을 기억하고 제대로 바로잡곤 했다. 바바와 함께 하는 삶에서 바바는 나를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하였지만, 저 말이 나의 가슴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분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나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한 말을 통해 바바 자신이 내게 상기시켜 주었고, 여전히 그분의 뜻을 따르도록 일깨워 주셨다.
우리 만달리가 바바와 함께 사는 동안 그토록 많은 계약에 서명한 것처럼, 영적 수련생들에게도 바바와의 계약에 서명할 것을 나는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말했듯이 그것은 가슴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하며, 이것이 바로 각자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 이유이다. 아마도 두 개의 계약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영적 수련 프로그램 책자’에서, 영구 수련을 받기 전에 영성 수련을 받는 데 5년의 준비 기간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따라서 아마도 그 사람은 “아바타 메허 바바와 그의 동반자들이 살았던 삶, 특히 ‘새로운 삶’이라고 일컬은 것에 따라 모범을 보이고 실천하는 것, 일상적인 세속적 활동 가운데도 늘 포기와 초연함을 실천하는 것, 즉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을 수련하고 있다”는 신탁 증서의 말에 초기의 합의가 있울 수 있다. 또한 계약서는 각 영적 수련생이 ‘영적 수련 프로그램 책자’를 읽도록 명시할 수 있다.
그래서 영적 수련생은 ‘세상 속에 있되, 세상에 속하지 않기 위해’ 수련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너무나 어렵고, 헌신을 유지하고 항상 비러벳에게 초점을 두지 않는 한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생각이 올 수도 있고 욕망이 올 수도 있지만, 그것들을 행동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그런 다음 그 사람, 즉 영적 수련생이 내적으로 준비되었다고 느끼고(기간에 관계없이) 온 가슴을 다해 새로운 삶에 합류하기로 결심하고 준비되면, 바바의 새로운 삶의 노동 단계에서 주신 고정 조건과 함께 새로운 삶의 메시지를 제공하는 더 구체적인 또 다른 계약에 서명할 수 있다. 이때 영적 수련생은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신께 서면으로 서약한다.
이 모든 것이 내게는 매우 실제적인 것으로 보인다. 내가 가진 유일한 두려움은, 그것이 기계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가슴으로 따르지 않으면, 영성 수련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분을 기쁘게 하기 위해 온 가슴으로 사랑으로 행해져야 한다. 영성 수련에 진심으로 관심이 있고 새로운 삶의 메시지에 따라 살고 싶은 이들은 고정된 조건을 초대할 것이고, 신 앞에서 사랑으로 서명하고 맹세할 것이다. 그것은 모두 자발적이어야 한다. 새로운 삶 계약에 서명하는 것을 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내적인 정직의 문제이다. 그것은 각각의 개인과 바바 사이에 있다. 그러나 또한 영적 수련생들 간에, 서명한 사람과 서명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구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실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영적 수련생들은 이미 장기 연장 비자를 받기 위해 오래 전에 인도 정부에 제출한 의향 선언서에 서명하고, 자신들이 여기에 있는 이유에 대해 신 앞에서 서면 맹세를 했다. 그 당시 우리는 영적 수련을 설명하기 위해, ‘행동하는 명상’과 ‘내적 규율’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그러나 새로운 삶의 노동 단계 외에 ‘행동하는 명상’이란 무엇이며, 고정된 조건을 따르는 것 외에 ‘내적 규율’이란 무엇인가? 이제 새로운 삶의 계약을 맺고, 고정된 조건을 따르고, 비러벳 신 앞에서 사랑의 맹세를 함으로써 영성 수련을 계속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그대들의 몫이다. 최근에 온 영적 수련생과 프로그램에 새로 참여하는 영적 수련생은 첫 번째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
영적 수련생들이 ‘새로운 삶’ 계약에 서명할 때, 비러벳께서는 그들의 결심이 마스터의 소망에 따라 마스터를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기뻐하실 것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분을 점점 더 기쁘게 하기 위해, 거짓된 자아에 대해 점점 더 적게 생각해야 함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그것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영성의 사전에 정당화란 없다. 그들은 스스로를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는 비러벳과 함께 있었고, 나는 마음(mind)이 즉시 부서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분을 의지할 때 가슴(heart)를 점점 더 강하게 하시고 마음(mind)을 점점 더 약하게 만드신다.
수십 년 동안 이곳에 있었고 그 기간 동안 바바를 섬기는 일에 삶을 헌신하기로 결심한 영적 수련생들이, 고정 조건에 서명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서면 맹세를 해야 하는지 나에게 묻는 질문은 과연 무엇인가? 지성이 그런 일을 위해 사용될 때, 내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모임 당일에,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에게 달렸다”고 말한 것이다.
바바가 만달리에게 하게 한 것처럼 계약을 하게 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그분의 대의에 헌신해온 사람이, 왜 이런 식으로 지성(intellect)을 사용해야 하는가? 지성은 계속해서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내며, 그렇게 함으로써 없어야 할 곳에 장애물을 만든다. “그냥 해!”라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강압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다른 누구의 소망이 아닌 비러벳의 소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바는 그분의 뜻에 따라 동반자들이 새로운 삶의 노동 단계를 이끌도록 고정 주건을 주시고 맹세하게 하셨다.
새로운 삶에는, 랑고티 생활(허리천만 두르고 명상하는 생활), 집시 생활, 육체 노동의 세 단계가 있었다. 바바는 그분 스스로 동반자들을 위해 첫 세 단계를 이끌 것이며, 노동 단계는 그분의 동반자들이 살아야 한다는 확신을 주셨다. 노동 단계에서 바바는 세 가지 계획을 세웠다. 이것은 ‘영적 수련 프로그램 책자’에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으며, 앞으로 출판될 <메허 바바의 새로운 삶>이란 책에서 새로운 삶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바바와 동행한 이들은 ‘계획 3’에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바바는 새로운 삶을 사는 데 자신의 육체적 임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이 세 번째 계획도 폐지하셨다 .
새로운 삶의 노동 단계는 이 현대, 행동의 시대에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삶에서 바바의 작업을 통해 그분은 ‘포기’를, 외면이 아닌 내적인 것으로 만드셨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일을 신께 정직하게 바칠 때 그분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은 노동 단계를 통해서이다. 그러나 새로운 삶은 이 시대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바가 ‘새로운 삶 메시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항상 중요하다. 새로운 삶에 참여하는 것은 거짓된 삶의 종식이 시작되는 것이다. 조건을 따르는 것은 영적 수련생이 마음을 소멸시키고, 신과 하나됨을 이루는 모든 삶의 목표를 준비하도록 이끌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삶의 노동 단계에서 그분께서 주신 것은, 지성으로부터의 어떤 타협도 없이 온전한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비러벳 바바가 항상 적극적으로 현존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한다. 비러벳 바바가 매우 활동적이라고, 육체적 삶에 계실 때보다 지금 더 활동적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단지 거짓 말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느낀다. 나는 그것을 느끼며, 동시에 새로운 얼굴들이 그분께로 오는 것을 볼 때마다 그분께서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느낀다. 그들은 비러벳께서 마지막 은둔(seclusion)의 순간에 이미 그들의 짐을 짊어지셨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 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모든 이가 축적해온 부자연적 인상*의 짐이었다. 이 짐은 의식이 신을 향해 더 나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그분은 각 개인의 짐을 적극적으로 줄여 주고 있으며, 그 과정이 시작된 이후로 사람들이 그분께 나아오고 있다. 이러한 깨어남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모든 이가 그분을 따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을 따르려면 가슴(heart)을 써서 그분에게 정직해야만 한다. 마음(mind)을 써서 그분을 따르려고 하면, 실제로 그분을 따를 수 없다. 마음(mind)이 하는 일이라고는, 한 사람의 인상에 따라 사물을 해석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부자연적 인상(unnatural impression) : 이기심, 정욕, 증오, 착취, 시기, 모략, 뒷담화 등 인간이 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막는 악한(evil) 인상.
의식이 작동하는 인간이 되고부터 축적되는 옳고 그름, 선악을 분별하는 비자연적 산스카라(nonnatuarl sanskara)와 구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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