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 설명 2
비러벳 바바가 육체적으로 계셨을 때, 그분은 다양한 사람들의 질병(산스카라)에 따라 치료법(즉 그분의 명령)을 주셨다. 바바는 사람들이 그분의 명령을 100% 따르는 것을 보곤 하셨다. 바바는 전 세계 바바 러버들을 위해 1958년, ‘그분의 소망’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주셨다. 러버들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바바의 떠올림을 생생히 유지할 수 있는 방법과 세상 속 의무를 다하는 방법에 대한 일반적인 지침이었다. 그리고 스승과 함께 살았던 우리는 그분의 곡조에 맞춰 춤을 춰야 했고, 그분은 매 순간 계속해서 곡조를 바꾸셨다.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분의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은 지났다. 그러나 비러벳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적 수련 프로그램이 있다. 사람들은 조건들을 그분의 명령이라 생각하고, 전심으로 따르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고정된 조건과 맹세가 있는 새로운 삶 계약서는 이사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바의 말씀이다. 영적 수련생들은 이사회 앞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동반자와 같이 비러벳 앞에서 새로운 삶의 계약서에 서명한다. 다만 책임자(이사회)에게 서명된 계약서 사본을 기록으로 제공해야 한다. 맹세에 관해서는, 그러한 맹세를 작성한 후 영적 수련생들은 바바와의 맹세를 마음속 보물로 간직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영적 수련의 삶을 통해 바바를 사랑하고 섬기려고 노력할 때, 그 맹세가 그들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극복하도록 상기시키고 영감을 주어야 한다. 영적 수련을 받고 있지 않은 이들은, 그분의 명령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분의 도움이 함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분의 소망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영적 수련생 자신이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 아는 것은 매우 매우 중요하며, 그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이 의무는 언제나 있어야 하며,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므로 고정된 조건으로 새로운 삶 계약서에 서명하고 선서를 하고는, 의도적으로 이를 따르지 않고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건 위선이다.
서명하지 않은 영적 수련자들에게는 그들의 소관으로 맡겨진다. 강요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시간을 주어야 하며, 그들이 기꺼이 서명하러 나올 때 이 기회를 주어야 한다. 책임자는 영적 수련을 기계적인 삶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명확하다. 비러벳을 위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런 질문 없이 서명하고 맹세할 것이다. 서명을 원하지 않는 이들은 아직 비러벳을 위해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온 가슴으로 결심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나의 제안이다. 나는 미래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미래의 이사회는 준비 기간이 지난 후, 영적 수련생들이 새로운 삶 계약에 서명할 준비를 해야 할지 아니면 모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결정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에게 맡겨져 있다. 그러나 지금, 현재의 영적 수련생 그룹에 대해서는 그렇게 제안하지 않는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특이한 상황에서 이곳에 왔는데, 나는 그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바바, 그리고 그분의 만달리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미래에 다른 영적 수련생들에게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고정된 조건들에 대해 좀 더 얘기하고 싶은데, 일부 영적 수련생들은 고정된 조건을 자신이 지킬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고정 조건 2번에 대하여 - 여기서 바바는 나자르를 기대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바바 러버는 “바바, 당신의 나자르를 내려주세요.”라고 기도할 수 있다. 새로운 삶에서 바바는 자신의 나자르가 동반자들에게 내릴 것을 기대하지 않는 조건을 제시하셨다. 새로운 삶에서 바바도 평범한 구도자가 되셨다. 그러니 평범한 구도자에게 무슨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제 그분은 육체를 버리셨으므로 단순한 구도자 그 이상이다. 세계 어디의 사람들이라도 새로운 삶을 따를 수 있도록 비러벳 바바는 구도자의 삶을 이끄셨다. 그분은 구도자의 역할을 하셨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멸절시키는 역할도 하셨다. 이것이 새로운 삶의 끝이었다. 그분은 우주적 마음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멸절시키지 않으셨다. 그분은 인류를 위한 역할을 하고 계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분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여성을 만지지 말라는 조건 3번에 대하여 - 영성수련 프로그램 책 37-38페이지에서 나는 이미 말했다. “형제자매로서 남을 포옹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넘어가면 ‘영적 수련생은 그 누구와도 욕정 어린(lustful) 행위를 하지 말라’는 10번 조건을 위반하는 것이다"라고.
분노 표출에 대한 조건 5번 - 우리는 돌이 아니기 때문에,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우리가 분노의 표현을 억제할 수 없다면, (기계적으로서가 아니라) 온 가슴을 다해 참회의 기도를 바칠 수 있다. 약점은 모든 사람에게 있지만, 우리가 비러벳에게 집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면 내적으로 강해질 것이다. 남들 앞에 선하게 보이려고, 거짓된 겸손을 나타내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평정심(equanimity)을 키우고, 마음의 균형을 지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순수해지기 위한 영적 수련이다. 그러나 영적 수련생들이 새로운 삶을 이끌기 위해 고정된 조건에 서명한다고 해서, 그들이 분노를 극복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비러벳을 그들 가슴에 간직함으로써 분노를 물리칠 것이다.
욕정 어린 행위를 하지 말라는 조건 10번에 대하여 – 영적 수련 프로그램 책자 123-124쪽. 나는 가끔 두 명의 영적 수련생이 서로에게 너무 끌려서 결혼하고 싶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이 영적 수련을 계속하기를 원한다면 이사회에 신청서를 제출하여 검토를 받아야 한다. 또한 나는 책에서 영적 수련생들이 결혼 후에도 10번 조건을 최대한 지키도록 노력해야 궁극적으로 정욕을 초월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만달리 중 일부는 결혼했다. 하지만 우리가 바바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점차적으로 욕망뿐 아니라 생각도 사라졌다. 행위에 대한 의문이 사라졌다. 내가 바바에게 왔을 때, 나는 결혼한 상태였다. 쉴라는 내가 바바에게 오기 전에 태어났고, 내가 바바에게 합류했을 때 라마(아내)는 이미 메허낫을 임신하고 있었다. 바바께 영구히 합류한 이후에 나는 그녀를 만진 적이 없었다.
내가 4년 동안 바바와 함께한 후, 바바는 아내와 두 자녀에게 아랑가온에 있는 직원 숙소에서 살도록 하셨다. 나는 그분께 “바바, 왜 그들을 여기로 부르셨나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바바가 말했다.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나에게 묻는 너는 누구냐? 너는 내게 물어볼 권한이 없다.” 그리고 그분은 그들을 부르셨다.
한 번은 바바가 나를 아랑가온으로 하루 밤 동안 보내셨고, 나는 다음 날 바바에게 돌아왔다. 바바는 모든 만달리 앞에서 내게 물으셨다. “너는 어떤 욕정 어린 행동을 하였느냐?” 나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요”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바바가 떠났을 때, 비슈누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나요?” 나는 말했다. “나는 생각과 욕망을 갖곤 합니다. 나도 거기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항상 바바를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시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비슈누에게 영감을 주었다. 바바가 아내를 만나라고 날 보낼 때마다, 비슈누는 늘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내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나는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결혼하는 일이 일어났고, 그것은 바바의 소망이란 걸 보여준다.
바바께서 몸을 떨어뜨렸을 때, 그분은 어떤 욕망이나 생각도 갖지 않는 선물을 내게 주셨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욕망도 갖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실제로 영성에는 자유 의지가 설 자리가 없다. 모든 일은 신성한 뜻에 따라 일어난다. 그러나 신성한 뜻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사람들은 선을 행하는데, 그것은 그분의 뜻이다.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것 또한 그분의 뜻이다. 사람들은 신의 뜻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신께서 하신 일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의심할 바 없이 모든 것이 신성한 뜻에 따라 일어나지만, 우리는 신성한 뜻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아바타는 인류가 따라야 하는 신성한 소망을 가져오며 시대를 거듭하여 다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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