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 설명 12


새로운 삶의 메시지를 실천하겠다고 결심하고, 조건을 준수하며 맹세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져야 한다. 그러면 정직하고 진실하며 사랑으로 그분을 섬기는 달콤함과 순수함이 거기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비러벳을 섬기고 그분을 기쁘게 하는 일 한 가지만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 수련을 받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5. ‘영적’이라는 단어 또는 그 의미는 직위나 부서에 대한 접두사나 접미사로 사용될 때, 오해의 소지가 있다. 수련생이나 부서 및 부서 관리자에게 영적 수련생, 영적 일꾼 부서 및 영적 부서 관리자와 같은 '영적' 접두사가 붙은 직위가 부여되는 경우, 권위의 함정과 역할 및 기능에 대한 오해가 잠재적으로 더 크다.


질문:

영적 수련 프로그램은 사람이나 부서에 영적인 권위를 인정하지도 부여하지도 않는데, 왜 그들을 특정 역할이나 기능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르며 오용과 오해의 가능성을 만들어 내나요? 저런 이름 대신에 ‘수련생’ ‘근로자 부서’ ‘근로자 부서 관리자’ 등 해당 기능에 의해서 이름 붙이는 건 어떤가요?


나는 이미 권위와 책임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영적 권위는 그 누구도 주장할 수 없지만, 영적 수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그 책임을 자신의 가슴에서 느껴야 하고,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신탁 증서 자체에는 ‘영적 깨달음을 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바바를 사랑하는 이들을 훈련시키는 시설’이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이 수련은 영적 수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단어를 피할 순 없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단어이며, 영성은 지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것임을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한다. 종교에는 늘 의식, 의례, 전통이 있다. 영성은 다르다. 영성은 종교의 테두리 안에 들어갈 수 없다. 영성은 이해를 초월한다. 영성은 가슴과 연결돼 있다. 그것은 지성이나 정신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가슴의 언어는 침묵한다. 비러벳 바바는 유일한 권위자이며, 신탁 증서에 영적 수련의 목적을 포함시키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목적을 성취할 때, 그분의 기쁨이 거기에 있다는 온전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왜 '영적 수련생'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느냐, 또는 그 이름으로 부서명을 지정하느냐는 문제가 나오는 걸까? 어떤 종류의 수련이 있을 때면 부서를 그렇게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수련'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 단어는 바바가 증서에서 명시한 수련이기 때문에 피해서는 안 된다. 이 단어는 다른 곳에는 사용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린 그것을 매우 기꺼이 행복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받아들일 뿐 아니라 이에 대해 어떤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가 여기에 있는 목적은, 거짓된 자아와 거짓된 마음의 작용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서에 '영적'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부서장이나 부서 직원에게 영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것인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권위는 참된(Real) 지식을 갖는 데서 나온다. 그러나 누군가가 관리자로 임명되면, 이사회가 정한대로 해당 부서에 대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의료 부서, 교육 부서, 순례 시설 부서, 기록 보관 부서, 영적 일꾼 부서 그 어디에서 봉사하든 모두가 동일하다. 모두가 바바를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적 수련생들은 각자의 자격에 따라 각 부서에서 봉사한다. 그러나 가장 좋은 자격은, 어떤 추론이나 지성을 사용하지 않고 가슴으로 그분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바바는 말씀하셨다. 신은 혀의 언어를 듣지 않는다고. 신은 마음(mind)의 언어를 듣지 않으신다. 그분이 듣는 것은 가슴(heart)의 언어, 즉 침묵하는 신의 언어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가슴으로부터 비러벳을 위해 해야 한다. 먹을 때, 그분을 위해 먹으라. 일할 때, 그분을 위해 일하라. 그분이 모든 행동, 모든 생각, 모든 말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신이 우리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 가슴 속에 그 조용한 갈망을 가져야 한다.


나는 바바의 명령을 해석하는데 나의 지성을 어떻게 썼는지 이야기할 것이다. 1954년, 비러벳 바바가 은둔 생활을 하게 되셨을 때, 그의 하미푸르 러버들은 바바에게 편지를 쓰거나 만나러 갈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들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신의 이름을 염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도 모임을 만들었다. 각 그룹은 2시간 동안 계속해서 신의 이름을 반복해야 했고, 이 모임은 4개월 반의 기간 동안 형성되었다.


바바가 은둔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은 이를 알리는 편지를 바바께 보냈다. 그 편지가 낭독되자 바바는 말씀하셨다. “나의 러버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한 번 보라. 너희(만달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바바는 만달리 각 사람에게 시간을 분배하셨다. 에루치에게 한 시간, 펜두에게 한 시간, 비쉬누에게 한 시간, 닐루 박사에게 한 시간, 구스타지에게 한 시간, 알로바에게 한 시간, 던킨 박사에게 한 시간, 나에게 한 시간, 바이둘에게 여섯 시간 등. 카이코바드는 매일 수십만 번씩 신의 이름을 염송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해야 하는 시간은 점심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시간에 했다. 바바가 명령을 내릴 당시에 난 내게 할당된 시간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일 알로바와 나는 바바의 방갈로로 가서 남자 만달리 방갈로로 모셔왔다. 그런 다음 정확히 10시 30분에 바바를 다시 그분의 방갈로로 모셔가고, 신의 이름을 반복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종교에 따라 신의 이름을 반복하고 있었다. 펜두, 구스타지는 ‘예즈단’을 반복하고, 에루치는 ‘아후라마즈다’를 반복했으며, 알로바는 ‘알라-후-악바르’를 반복했다. 던킨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반복하고, 비쉬누와 닐루 박사, 나는 ‘옴 파라브람 파라마트마’를 반복했다.


이제 신의 이름을 반복하는 첫날이 시작되었다. 나는 바바를 그분의 방갈로로 모셔간 후에 돌아왔다. 그리고는 침대에 앉아 눈을 감고, ‘옴 파라브람 파라마트마’를 시작했다. 그러나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마음은 점심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들 밥을 먹고 있겠지.' 그런 다음 나는 다시 ‘옴 파라브람 파라마트마’를 했지만, 또 떠오른 생각은 ‘나에게 남은 음식이 있을까?’였다. 그런 다음 ‘옴 파라브람 파라마트마’를 하고는 ‘이 편지를 써야 해, 저 편지를 써야 해, 이렇게 해야 해, 저렇게 해야 해’라는 세 번째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한 시간 내내 다양한 생각을 하며, ‘옴 파라브람 파라마트마’를 반복했다. 나는 매우 실망스러웠고 다른 사람들은 아주 잘하고 있을 텐데, 내가 아주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죄인이기 때문에 신의 이름을 반복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둘째 날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특히 신의 이름을 암송할 때 다양한 생각이 점점 많아졌다. 넷째 날, 신의 이름을 암송할 땐 생각이 너무 많아서, ‘바바에게 이 명상에서 나를 면제시켜 달라고 해야 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때 누군가 나를 봤다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전심으로 명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명상은 가슴(heart)과 연결되지 않았다. 그것은 마음(mind)과 연결되어 있었다. 마음이 우위에 있었다. 내가 바바에게 명상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요청하기로 결심했을 때, 누군가가 머리를 두드렸다. 눈을 떴더니 바바가 거기 서 계셨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말했다. “바바 용서해주세요. 저는 이걸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신의 이름을 암송할 때 너무나 많은 생각이 듭니다.”


“당신은 내게 신의 이름을 반복하라고 명령하셨지만요.” 난 말했다. 그러자 바바가 말하셨다. “너는 신의 이름을 반복하고 있다. 그것이 나의 명령이다.” “특히 그때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요.” 그러자 바바가 말씀하셨다. “나는 네게 신의 이름을 반복하라고 했다. 그리고 넌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왜 걱정하느냐?” 바바는 이런 예를 드셨다. “모기가 있을 때, 넌 무얼 하느냐? 침대 주위에 모기장을 펴고, 모기장 안에서 잠을 잔다. 밖에서 모기가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모기는 너에게 똑같이 와서 물지 않는다. 내가 너희에게 신의 이름을 반복하라고 해서 너희가 그렇게 할 때, 떠오르는 생각과 욕망은 모기와 같다. 너희가 내 명령을 따르고 신의 이름을 반복할 때, 마음에는 이미 내 사랑의 모기장이 쳐져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생각과 욕망은 너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 내 명령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과 욕망이 오게 하라. 행동으로 옮기지 마라. 계속해서 신의 이름을 반복하되 항상 기억하라. 내가 내리는 명령에는 온 가슴을 다해 순종해야 한다. 단지 나의 명령을 따르며, 다른 생각과 욕망을 행동으로 옮기진 마라. 그러면 너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나의 의무는 생각과 욕망이 올 때, 그것을 없애는 것이다. 너의 의무는, 내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바의 말씀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마음(mind)을 계속 사용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신 가슴(heart)를 사용하여, 가슴 안에서 그분을 느끼도록 하라. 진실로 그분을 따르고 그분을 기쁘게 하는 방법을 알 수 있도록.


6. 영적 수련 프로그램 행정 계층에 의한 보고, 검토, 평가, 지도, 질문, 서신 등 – 업무 성과 및 행동으로 제한됨.

질문에 대한 답변, 후원 편지 작성, 보고서 및 리뷰 작성, 연수생에 대한 안내 등은 행정 절차의 일부이다. 영적 수련 프로그램의 행정 계층이 제공하는 보고, 검토, 평가, 후원 편지, 평가 및 지침에 대한 모든 결정의 기초는 수련생의 작업 성과, 태도 또는 행동과 관련해서만 내려질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질문:

프로그램의 행정 계층은 영적 수련생의 ‘외부적인’ 수행이나 행동 이외의 어떤 결정도 근거로 삼을 권한이 없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영적 수련 프로그램 소책자 26페이지에서, 나는 영적 수련생의 외적, 내적 수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적 수련생이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방식은 또한 내면을 나타낼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적으로, 그대는 그렇게 함으로써 비러벳의 소망을 성취하고 있다는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일에 마음을 쏟음으로써 신탁 증서의 목적이 달성되도록 돕는다. 그대가 사랑스럽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일하면서 하나됨의 정신으로 행동할 때, 이름, 명성 등에 대한 거짓 자아의 충동은 억제되고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어 참된 자아(Real Self)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대의 가장 깊은 내적 의도를 외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영적인 삶이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하나됨의 정신으로 비러벳을 섬기지 않는다면, 외적인 행위는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외적인 업무가 이루어졌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결코 비러벳을 기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또한 감독자가 영적 수련생의 외적인 성과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계속해서 말한다. 

"그대의 의무를 외부적으로 수행하려면, 그대에게 할당된 작업이 완료되었는지 확인하는 감독자가 필요하다. 감독관, 부서장, 부서 감독관 등 감독관의 의무와 책임을 맡은 그대들도 영적 수련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감독자로서의 역할은 외부적인 역할이다. 그대의 관심은 작업이 어떻게 수행되는지 설명하고 작업이 만족스럽게 완료되도록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대의 감독하에 있는 영적 수련생들은 때때로 그들의 임무에 실패할 것이고, 미래의 자기 임무를 더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교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대는 비러벳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것은 비러벳과 러버 사이의 가장 개인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바바에 대한 누군가의 사랑을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토서를 작성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영적 수련생이 자신의 일을 ‘어떻게’ 하는지 볼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영적 수련 프로그램 소책자 80페이지에서, 나는 검토서의 기본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거기에서 난 이렇게 말했다.


"검토서는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가? 검토는 영적 수련생이 자신의 업무를 만족스럽게 수행하는 지의 여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주어진 업무가 적합한지, 아니면 다른 부서로 옮겨야 하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비러벳 바바에 대한 가슴의 사랑을 누구도 판단할 수 없지만, 외부 구조는 내부 구조를 반영한다. 그래서 검토서는 머리와 가슴 모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일이 정직하고 진실하며 사랑으로 행해지는가?(가슴이 활동하는 곳), 제대로 행해지는가?(머리/지성이 활동하는 곳)"


검토자에게는 이중의 책임이 있다: 즉, 비러벳과 그분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 양쪽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검토자는 외적 작업을 관찰할 때, 수련생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고려해야 한다. 검토자는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이는 좋은 테스트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는 영적 수련생을 편애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질투와 증오 등의 약점이 수련생에게 해를 끼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바를 불쾌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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